최고의 애국자는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란 말이 있다. 세금으로 복지제도가 돌아간다. 세금이 없으면 도로 같은 사회간접자본도 없다. 세금은 극히 일부가 독차지한 부 가운데 일부를 국민 전체에게 나눠주는 효과가 있다. 법대로 세금을 내야 세상이 굴러간다. 그러나 누가봐도 이건 아니다 싶은 세금도 있다. 기부금에 과도한 세금이 붙어 논란이 인 사례를 찾아봤다. 좋은 일을 하려고 했지만 세금폭탄을 맞고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 

42억원 기부했더니 세금 27억원 매겨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오른쪽)이 1939년 중국 충칭에서 김구 선생(가운데), 김인씨(왼쪽)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공군 제공

백범 김구 선생의 후손은 기부금에 매겨진 세금 탓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백범의 차남인 고(故)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은 2006년부터 10년에 걸쳐 미국 하버드·브라운·터프츠 대학, 대만 타이완 대학 등에 42억원을 기부했다. 항일 투쟁의 역사를 알리는 ‘김구포럼’과 한국학 강좌 개설 등 한국을 알리는 데 써 달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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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 전 총장이 별세하고 2년여가 지난 2018년 10월, 국세청이 김 전 총장의 자녀들에게 기부금에 대한 상속세와 증여세 27억원을 물렸다. 공익법인에 기부한 재산은 상속·증여세를 감면받을 수 있지만(상속·증여세법 제48조), 국내에서는 외국 대학을 공익법인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세금을 감면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원래 상속세와 증여세는 상속·증여를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국세청은 이 사안처럼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기관에게 세금을 걷지 못할 때는 증여한 사람이 세금을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세청이 해외 거주자에게 세금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김구 가문은 2019년 1월 납세자 권리구제기관인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해 부과된 세금 중 14억원을 취소받았다. 사회 통념상 인정되는 교육비 등은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상속·증여세법 제46조를 근거였다. 후손들은 남은 13억원에 대해서도 소송을 낼 계획이었지만 포기했다. 법으로  절차가 만만치 않다는 판단으로 소송을 포기했다.

주식 기부했다가 체납자 된 사연

180억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했다가 140억원 세금폭탄을 맞았던 고(故) 황필상 박사./KBS ‘KBS 뉴스9’ 유튜

기부가 법적 다툼으로 이어진 사례는 몇 해 전에도 있었다.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 창업주인 고(故) 황필상씨는 2002년 180억원 상당의 회사 주식 90%와 현금 15억원을 모교인 아주대학교에 기부했다. 아주대는 황씨와 공동으로 ‘황필상 아주 장학재단(현 구원장학재단)’을 세워 대학생 1000여명을 지원했다. 

그런데 2008년 국세청은 이 재단에 증여세 100억원에 가산세 40억원을 보태 세금 140억원을 물렸다. 공익법인에 특정 기업의 주식을 5% 넘게 기부하면 초과분에 대해 최고 50%의 상속·증여세를 내야 한다는 상속·증여세법 제48조가 그 근거였다. 자산가들의 편법 상속을 막기 위해 만든 법을 황씨의 기부금에 적용한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무늬만 공익재단을 세우고 자식을 재단이사장으로 임명한 다음 주식을 재단에 기부할 수 있다. 이 경우 기부금이 기업 주식의 5% 이하면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경우가 다르다고 판단한 재단은 2009년 세금 부과에 대한 소송을 냈고 2017년에야 대법원 결정을 받았다. 결국 대법원은 황 박사의 손을 들어줬다. 경제력 세습과 무관하게 기부를 목적으로 한 주식 증여에도 거액의 증여세를 매기는 일은 부당하다는 판단이었다. 황씨는 대법원 결정 이듬해 별세했다. 재판 과정은 험난했다. 재단 이사장이었던 황씨는 세무 당국과 법정 공방을 벌이던 과정에서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주식기부 받았지만 쓰지도 못해

고(故)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은 남서울은혜교회에 주식 1만7000주를 기부했지만 교회는 아직 기부금을 쓰지 못했다./연합뉴스TV 유튜브 캡처

기부받은 돈을 한 푼도 쓰지 못한 경우도 있다. 남서울은혜교회는 2015년 고(故)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으로부터 오뚜기 주식 1만7000주를 기부받았다. 기부금으로 교육 여건이 열악한 미얀마에 학교를 세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기부받은 주식은 증여세 부과 취소 소송을 진행하느라 아직 담보로 잡혀 있다. 2016년 세무 당국은 교회에 최고세율 50%를 적용한 기부금 절반을 증여세로 매겼다. 기부 당시 오뚜기 주가는 108만원. 184억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받았으니 약 92억원을 증여세로 내야하는 셈이다. 교회는 세무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1심에서는 교회가 이겼지만 2심에선 판결이 뒤집혔다. 지금은 최종심을 기다리고 있다. 

소송을 진행하는 사이 오뚜기 주가는 56만원(10월22일 기준)까지 떨어졌다. 만약 교회가 재판에서 져 50%의 증여세를 내면 교회가 쓸 수 있는 기부금은 3억2000만원으로 줄어든다. 기부받은 주식은 현재 주가로 95억2000만원 정도인데, 92억원을 증여세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해 밀알복지재단도 오뚜기로부터 주식 1만주를 기부받았으나 주식 평가액의 43%에 달하는 증여세를 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밀알복지재단은 2018년 증여세를 냈고, 이후 증여세 부과 취소 소송을 제기해 납부한 증여세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세금으로 선의 가리는 일 없어야

2019년 미국 포브스가 발표한 ‘올해의 아시아 기부 영웅 30인’에 선정된 아이유. 아이유의 기부액은 2019년까지 총 9억5000만원이 넘는다./EDAM 엔터테인먼트 제공

국회입법조사처는 2020년 ‘공익 기부 과세에 대한 입법과제’ 보고서를 통해 선의의 기부자를 세금폭탄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보고서는 관세청이 법률에 따라 획일적으로 매긴 세금이 오히려 형평성에 어긋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을 개정해 기부에 대한 과세 기준을 완화하자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국내 상속·증여세법은 자산가의 편법 상속 목적 기부를 막기 위해 주식기부 면세비율을 5%로 잡았다. 미국의 주식기부 면세비율이 20%, 일본은 50%다. 쉽게 말해 공익법인에 특정 기업의 주식을 50% 기부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초과분인 45%, 미국에서는 25%에 대한 상속·증여세를 내야 한다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대기업이 세운 재단과 공익법인에 똑같은 규제를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기업 경영권과 관련 없는 공익법인의 경우 주식기부 면세비율을 높이거나 규제를 풀고 사후 관리를 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세청과 한국은행은 2018년 국내에서 기부에 쓰인 돈이 국내총생산(GDP)의 0.73%였다고 밝혔다. 미국(2.08%)의 3분의 1 수준이다. 미국은 주식 기부를 제외하고 자선단체나 정치단체 등에 기부하는 경우 증여세를 매기지 않는다. 

한국모금가협회 관계자는 “현행 세법규정의 특성상 선의의 기부 후 막대한 상속·증여세를 부과받는 사례는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조세 회피 목적 없는 선의의 기부자가 별 탈 없이 기부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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