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5호선 열차에 불을 지른 혐의로 붙잡힌 60대 남성 원모(67) 씨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 당시 승객들의 아찔했던 상황이 담긴 영상도 공개되며 충격을 더하고 있다.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원씨는 지난달 31일 오전 8시 42분께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 방향으로 향하던 열차 4번째 칸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흰색 모자를 쓴 그는 노란빛의 액체가 담긴 페트병을 꺼내 들었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두 차례에 걸쳐 바닥에 휘발유를 뿌렸다.

이 과정에서 옆 칸으로 대피하던 승객 두 명이 휘발유에 미끄러지기도 했으나, 불이 붙기 직전 간신히 일어나 목숨을 건졌다. 일부 승객은 급히 옆 칸으로 몸을 피했지만, 몇몇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원씨를 바라보는 모습도 포착됐다. 한 여성은 신발 한 짝도 챙기지 못한 채 맨발로 대피했다.

불길은 순식간에 번졌다. 옆 칸 승객들은 처음에는 불이 난 사실조차 몰랐지만, 갑작스레 몰려드는 인파를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곧장 탈출을 시도했다. 불이 시작된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열차 내부는 검은 연기로 가득 찼고, 승객들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손으로 입과 코를 막은 채 연기를 견뎌야 했다.

이날 열차에 탑승한 약 400명의 승객은 열차 문을 스스로 열고 선로를 따라 긴급 대피했다. 다행히 28년 경력의 베테랑 기관사의 침착하고 신속한 조치 덕분에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22년 전 대구 지하철 참사를 떠올리며 아찔한 순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서울남부지검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 전담수사팀은 25일 원씨를 살인미수, 현존전차방화치상, 철도안전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살인미수 혐의는 당시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 160명을 대상으로 적용됐다.

검찰은 원씨가 범행 전 이미 전 재산을 처분하는 등 신변 정리를 마쳤고, 휘발유를 소지한 채 서울의 주요 지하철역을 배회한 점 등을 근거로 계획적 범행으로 판단했다.

경찰 조사에서 원씨는 “이혼소송 결과에 불만이 있었다”며 방화 동기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휘발유는 범행 2주 전 주유소에서 미리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